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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나이 묻는 사회
- 저자
- 정회옥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출판연도
- 2026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몇 살이냐고 묻는다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한국의 나이 멸칭 문화와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혐오하는 ‘나이 전쟁’의 실체
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활력이 넘치고 트렌드에 민감한 40대,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면서 꼰대짓을 일삼는 40대를 지칭하는 ‘영포티’는 멸칭일까,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어르신을 가리키는 ‘할매미’는? 귀엽고 재미있는 어린이를 일컫는 ‘잼민이’는? 한 번이라도 입 밖으로 불러 보았거나 머릿속으로 떠올린 적이 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이 전쟁’에 참전 중인 셈이다.
‘틀딱충, 연금충, 개저씨, 김여사, 급식충, 초글링’ 등 한국 사회는 나이 멸칭 문화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년, 중년, 청년, 어린이 및 청소년 등 전 연령과 세대를 지칭하는 나이 멸칭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롱과 경멸을 주고받는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한다. 이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기준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때로 해악, 불이익, 부당함을 초래하고 세대 간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즉 상대의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혹은 같아서’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행위가 ‘연령차별주의’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회가 연령을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판단하여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특정 연령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그들에게 불리한 법 제도, 시스템, 규정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연령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달리 피해 당사자들이 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이라는 평등의 논리에 가려져 그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모두를 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연령차별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나이 전쟁’을 종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작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한 번은 불러보았다》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그의 신작 《나이 묻는 사회》는 세대별 나이 멸칭의 종류와 유래, 의미와 부작용을 살펴보고 정치, 사회, 대중문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연령차별주의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형 연령차별주의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게 일상적인 ‘나이 묻는 사회’다. 관계를 시작할 때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데 익숙하지만,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에는 서툴다. 문화평론가 이라영의 추천처럼 “나이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도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잠식하는 것도 반대”하고 경계해야 한다. 연령대 간 유대와 연대를 방해하고 단절과 반목을 조장하는 나이는 기꺼이 ‘묻어 버려야’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나이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내면화된 차별의 시선을 거두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을 통해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무기가 된 생애주기별 맞춤형 나이 멸칭들
치열한 나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생애주기별로 멸칭이 존재하니 누구라도 이 총탄을 피해 가기 어렵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우리 삶을 구조화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낸다. 증오와 멸시의 언어는 느린 속도로 개인들 안에 스며들어 잔혹한 행동으로 발현한다.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빗대어 만들어진 멸칭에는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짙게 담겨져 있다. 틀니를 희화화한 ‘틀딱충’, 감소된 청각 능력 때문에 크고 요란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행태를 비꼰 ‘할매미’, 벌레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바 없이 연금만 축내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연금충’ 등 멸칭들은 노인을 무력하고 쇠약하며 죽음과 가까운 존재로 그린다.(31쪽) 쇠퇴의 이미지는 중장년층에게도 이어진다. 부족한 생산력과 창의력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지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편견, 권위적이고 무례하며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이미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고 청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려 보이려는 이중적 태도, ‘꼰대, 개저씨, 김여사, 영포티’는 이를 조롱하는 멸칭이다.(47쪽)
원래 마케팅·트렌드 용어였던 ‘MZ, 삼포 세대, 욜로 세대’는 청년들에 대한 노년·중장년 세대의 무시와 비판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이 멸칭들은 청년을 공적인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 욕구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존재로 그린다. 미래를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욕도 없고 게으르며 불성실한 세대, 한마디로 무능하고 부족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66쪽) 미래의 희망이자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청소년과 어린이도 나이 멸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급식충, 잼민이, ~린이’ 등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독립적 인격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기보다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이며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과 평가가 내포되어 있다. 문제는 차별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차별하는 어른이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75쪽)
한국 사회는 나이라는 범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각 나이대마다 멸칭을 만들어 붙였고, 이제 나이 범주는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기보다 부정적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자를 멸칭으로 부르는 행위는 고령자 개인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연결된다. 젊은 세대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늘어나면, 향후 이들이 노인을 위한 복지 제도를 결정하게 될 때 부정적 편견이 작동해 노인 복지는 감소하고 노인 빈곤, 노인 자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46쪽) 이러한 우려는 전 연령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나이 멸칭을 단순한 언어적 유희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 멸칭의 폐해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정치, 사회, 대중문화 등 전방위에서 차별과 혐오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연결시킨 한국형 연령차별주의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생존을 위한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종종 ‘생산성=인간의 가치’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저하됐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노인과 어린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불평불만과 남 탓만 일삼는 청년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멸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죽음과 가깝거나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차별을 받는다.(117쪽)
정년제는 대표적인 제도적 연령차별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이 갑자기 무능력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퇴직을 시키는 것이다.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연령 기준 강제퇴직은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연령층을 다른 연령층에 비해 다르게 처우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행복추구권, 직업 선택의 자유, 평등권, 근로권 등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 해외에서는 정년제가 폐지되거나 연장되는 추세이며, 정년 연장의 기준을 사회보장제도와 연계하여 설계하고 있다.(156쪽)
고령자 운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는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커지고 있다. 노화가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나이보다는 운전 당시의 몸 상태나 피로도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늙은 몸과 나이’가 아닌, 위험한 운전을 하는 ‘행동’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년층의 운전을 무조건 금지하기보단 면허 제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178쪽)
우리나라의 정치 영역에서는 연령차별적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수 있다. 최다 득표자가 2명 이상이면 연장자가 당선되다는 규정, 이른바 ‘장유유서 선거’가 대표적이다.(188쪽)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40세 이하 젊은 정치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고, 국회의원·지방의원·교육감 등과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는 40세 이상인 사람만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정도 존재한다.(197쪽)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투표권을 가지고, 나이가 많을수록 더 적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차등 투표제·여명 투표제도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발상이다.(206쪽)
청년층의 주거 안정과 저출생 극복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경우 세대원 수별 규정된 면적이 너무 좁게 산정되었는데 이는 “젊으니까 좁은 데 살아도 괜찮다”는 낡은 편견이 바탕인 정책이다.(212쪽) 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네는 “대견하다” 혹은 “기특하다”는 칭찬에는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지 않고 미성숙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219쪽) 이 외에도 어르신 호칭 문제, 임금피크제, 황혼육아와 돌봄노동, 저속노화 열풍,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다양한 연령차별 문제가 숨어 있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제한을 모두 없애는 방향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나치게 나이에 얽매인 사회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제도적 맥락에 맞는 나이 기준에 대한 논의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나이 전쟁’을 끝내고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향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함이 아닌 우열 또는 상하의 차등을 두었다. 이는 불평등을 전제로 한 유교 사상이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냉전 시대, 군사 독재 정권,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다. 나이에 따른 서열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규범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개인주의 대두, 평등한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가치 혼란을 가져왔다. 근대화 이후 그 기본 규범이 무너지고 세대 간 충돌이 발생했으며 각 연령대마다 맞춤형 편견과 차별이 혼재하게 되었다.(48쪽) 또 4차 산업 혁명, AI 기술의 보편화 등 사회가 매우 빠르게 변화함에도 여전히 밀도 있는 사회적 논의와 나이에 대한 도덕적 규율의 재창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이를 묻는 사회는 나이에 따른 여러 긴장을 발생시킨다. 한국 사회는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할 교육 제도나 환경이 충분하지 못하다. 저자는 나이를 묻지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연령 블라인드(age-blind) 사회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임을 강조한다.(322쪽)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간 접촉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 프랑스의 ‘한 지붕, 두 세대’처럼 고령층과 청년층 간 상호작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용한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또 어린이집과 노인 복지 시설이 함께 있는 세대 통합 돌봄 센터, 세대 간 멘토링 프로그램 등도 효과적이다.(310쪽)
세대 간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도 중요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퇴행, 기능 저하’처럼 부정적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노년기에도 새로운 발달이 시작될 수 있고 생애 단계마다 중요한 발달 과정을 거친다는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316쪽) 가상현실 기술을 사용해 노년 체험, 어린이 체험을 해 보는 것은 다른 연령대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를 넘어 실질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법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318쪽) 우리나라에도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과 집행에는 괴리가 있다.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을 전담하는 정부 기구를 설치하거나 정부가 민간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320쪽)
나이는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실태를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반드시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삶의 진리이자 역설을 일깨우며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공존의 길을 선사한다. -

다시 만난 세계
- 저자
- 김희교
- 출판사
- 푸른숲
- 출판연도
- 2026
“흔들리는 패권 사이에서 전략적 가치를 높여라!”
격변하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플레이어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 지침서
몇 해 전 《짱깨주의의 탄생》으로 도발적 논의를 던진, 미중관계사 전문가 김희교 교수(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의 신간 《다시 만난 세계》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나왔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국제질서의 거대한 격변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그간의 관찰과 분석을 바탕으로 유엔 시스템 및 동맹체제의 기반 약화, WTO 체제의 쇠퇴, 달러 패권의 불안정성 등 기존 세계질서에 나타난 균열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이에 맞서 급부상하는 중국 및 브릭스(BRICS) 등의 충돌 속에서, 한 세기 넘게 공고하게 작동하던 외교 공식들이 어떻게 무력화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정세 진단 너머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각자도생의 무질서한 국제정세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정치·경제적 요인을 짚어내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세계질서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서기 위한 대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대안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는 명쾌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

인비인
- 저자
- 성해나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출판연도
- 2026
《혼모노》 성해나 첫 기담집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
기묘하고 서늘한 아홉 편의 이야기
“죄를 덮은 자리에는 꺼슬꺼슬한 흔적이 남는 법이다.”
죄의 흔적이 새겨진 벚나무 책상,
실험실에서 태어난 잿빛 덩어리,
타인의 삶을 헐값에 사고파는 경매장,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요기 서린 기계……
어제의 죄와 오늘의 욕망,
내일의 삶을 흔드는 아홉 편의 괴이한 소설들
《혼모노》로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 문단의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자리한 작가 성해나가 2026년 6월, 첫 기담집 《인비인》으로 돌아왔다. 매 작품 단정하고 진중한 문장과 치밀한 취재, 시대에 걸맞은 화두와 역사의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가는 이번엔 ‘기담’이라는 장르적 형식을 빌려, 한층 더 기묘하고 서늘한 아홉 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은 늘 매혹적이면서도 기분 좋은 불편함을 남긴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자리를 조용히 흔들고, 무해하다고 여겨온 것들의 밑판을 들추어 그 아래 숨겨진 민낯을 독자의 손바닥 위에 꺼내놓는다.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 혹은 사람이어야 마땅하나 사람이기를 스스로 멈춘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위태로운 존재들의 모습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세 가지 시간의 축으로 길어 올린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인간과 대화를 하며 살지만, 더 이상 그것이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챗봇에게 위로를 받고, AI의 진단을 수용하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낯설고 두려워지는 것은 그 기계들이 아니라, 그 기계들 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성해나 작가는 매 작품마다 한국 소설 안에서 자신의 지형을 조금씩 다르게 그려왔다.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세대와 관계의 경계를 사려 깊고 진중하게 탐색했던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창비, 2025)에 이르러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해부한다.
젊은작가상 2회 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예스24가 선정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 배우 박정민의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추천사와 《혼모노》가 기록한 40만 부의 판매고. 이 모든 수식어들은 한곳을 가리킨다. 성해나라는 이름이 무언가를 들고 올 때, 우리는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제 첫 기담집 《인비인》으로 돌아온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다. 이번에 그가 가져온 화두는 가장 미래적이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단어인 ‘인간’이다. -

우월한 열등감
- 저자
- 알프레드 아들러
- 출판사
- 저녁달
- 출판연도
- 2026
불안한 시대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경쟁력이다!
열등감을 성장의 동기로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 3대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의 교육서 대표작 완역본!
SNS와 일상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부터 자신의 불안을 마주하고 단단해져야 한다. 『우월한 열등감』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남긴 교육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아들러는 누구나 느끼는 열등감을 결함이 아니라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재정의한다. 그러나 이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아이들은 과도한 허영, 완벽주의, 무력감 또는 반항이라는 가식으로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려 든다. 이 책은 심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아이의 문제 행동 뒤에 숨은 진짜 목적과 논리를 읽어내는 눈을 길러준다. 나아가 아이를 이해하려는 과정이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과 오랜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여정임을 깨닫게 한다.
『우월한 열등감』은 인간의 심리가 어떤 생애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교육을 주제로 하지만 인간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이를 바르게 이끌고 싶은 교육자와 부모에게는 현장에서 즉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고, 자기 마음의 깊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뒤에 숨은 심리적 논리를 해독하고 싶은 성인에게는 명쾌한 해답을 줄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삶, 실수 앞에서도 나를 혐오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은 어디에서 오는가. 수많은 심리학 서적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토록 투명하게 비춰주는 책은 흔치 않다. 진정한 나를 마주할 용기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1930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던 이 책은, 비엔나에 상담소를 세워 수많은 아이와 어른을 치유했던 아들러의 임상 사례와 연구가 집약된 걸작이며,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육자와 독자들에게 “아이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지침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한국어판은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번역을 맡아, 아들러의 깊은 통찰을 현대인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명쾌한 언어로 풀어냈다. -

무던해 보이지만 사실 예민한 사람입니다
- 저자
- 최치현
- 출판사
- 빅피시
- 출판연도
- 2026
“왜 똑같이 예민한데 누군가는 쉽게 지치고,
누군가는 민감함을 재능으로 바꿀까?”
누워 있기만 해도 생각이 끊이지 않아
쉽게 방전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퇴근만 하면 녹초가 돼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가능한 한 약속을 잡지 않게 돼요”,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잠을 이루지 못해요”….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쉽게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이 최근 더욱 늘고 있다. 많은 이가 이를 자신의 예민한 성격 탓으로 돌리며 고치려고 애쓰지만, 신경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정말 개인의 성향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감각과 생각을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무던해 보이지만 사실 예민한 사람입니다》의 저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최치현은 ‘예민함’을 고치거나 바꿔야 할 문제가 아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나만의 자원으로 바라본다. 또 개인의 기질을 넘어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예민함이 어떻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지 설명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다루고, 성장하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따뜻하고 다정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가진 예민함이 짐이 아닌 특별한 힘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유리 조각 시간
- 저자
- 성수진
- 출판사
- 나무옆의자
- 출판연도
- 2026
불안했던 시기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였던 두 사람
잊었던 그 세계가 어느 날 신호를 보내온다!
국내 대표 장편공모상인 세계문학상 제22회 수상작 『유리 조각 시간』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유리 조각 시간』은 학창 시절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하며 소설을 매개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재독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 성수진은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청소년기의 불안과 결핍, 연약한 연대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기억과 관계가 어떻게 삶을 다시 구성하는지를 차분하게 파고든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단(은희경, 정홍수, 전성태, 하성란, 강영숙, 김유진, 박혜진)은 “평범한 장면을 매혹적으로 만들어내는 디테일의 힘과 소설 읽는 행위 자체를 서사의 중심 장치로 삼은 구조가 특히 인상적이다.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하며 올해 응모작 177편 가운데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간호사 유영은 출국을 앞두고 병원을 그만둔다. 그날 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경진에게서 메일이 도착한다. 경진은 ‘유영’을 화자로 한 소설을 보내오고, 경진이 쓴 문장들은 유영을 어린 시절로 이끈다. 한편 경진의 소설에서 불길함을 읽은 유영은 그를 찾아가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직면하는데……. 상처를 감당하며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물들의 여정은 공감과 위로, 치유와 회복이라는 문학의 오래된 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2024년 단편소설 「눈사람들, 눈사람들」로 제1회 림 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수진 작가는 첫 장편소설 『유리 조각 시간』으로 세계문학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되었다. -

페이퍼 보이
- 저자
- 빈스 바터
- 출판사
- 라임
- 출판연도
- 2026
2014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한 방에 날리다
《페이퍼보이》는 초등학교 때 월반을 할 정도로 똑똑하지만 말더듬증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주저하던 ‘나’가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당당히 말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낸다.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주인공 ‘나’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통찰을 그린 이 작품은 칠십여 년간 말더듬이로 즐겁게(!) 살아온 작가 빈스 바터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써낸 자전적 이야기다.
2014년에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미국도서관협회(ALA) ‘주목할 만한 어린이 책’, 국제독서협회(IRA) ‘어린이·청소년 추천 도서’, 주니어 라이브러리 길드 추천 도서, 뱅크스트리트교육대학 선정 ‘올해의 책’, 북페이지 선정 ‘최고의 어린이 책’ 등 굵직굵직한 단체의 추천 도서로 자리매김하며 교사와 학생들에게 꾸준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주인공 ‘나’는 말더듬이다.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족할 게 조금도 없지만, 절친 래트를 대신해 한 달 동안만 임시로 신문 배달을 하기로 한다. 원래 야구팀에서 강속구를 잘 던지기로 유명했던 터라, 집집마다 신문을 던지는 일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다만, 매주 금요일마다 신문값을 받으러 다녀야 한다는 게 큰 걱정거리일 뿐. 말을 더듬거리지 않고는 단 한 마디도 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말투만 보고 대번에 모자란 아이 취급을 한다. 그래서 신문을 배달하기 전까지 온전히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섯 살 때부터 함께 살아온 흑인 가정부 ‘맘’뿐이었다.
대부분의 어른, 그중에서도 친척들과 부모님 친구들은 내가 뭔가 말을 하려 애쓰고 있으면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이 굴었다. 심지어 나를 대신해서 말을 끝마쳐 주는 어른마저 있었다.
물론 그건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니었다.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방안을 둘러보는 사이, 내가 얼른 다른 말로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어른도 있었다. 또 어떤 어른은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다른 곳으로 서둘러 가 버리기도 했다. _67~68쪽에서
뭐, 어른들이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게 아닌 줄은 안다. 하지만 ‘나’가 말을 더듬는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거나 코앞에서 아예 없는 셈치는 태도는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알게 된 스피로 아저씨는 장애란 남보다 열등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모습’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강조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내면의 본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달까.
맘과 스피로 아저씨의 공통점은 ‘나’를 그 어떤 편견도 없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나를 장애의 틀에서 끄집어내어 말더듬이여도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해 준다.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는 데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상을 꿈꾸며
수금하러 다닌 첫날 밤은 생각보다 잘 흘러갔다. 어떤 집은 수금 봉투에 신문값을 넣어 놓아 내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되었고, 또 어떤 집은 미처 생각지 못한 팁까지 챙겨 주었다. 마지막 차례인 스피로 아저씨도 신문값 95센트를 정확히 맞추어 준비해 두었다.
굳이 입을 열 필요 없어서 기쁜 마음으로 돈을 받아 나오려는데, 스피로 아저씨가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것!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워낙 힘들어서 거의 공포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나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어떻게든 소리를 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은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아저씨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정성껏 돌봐주고는, 내가 말을 더듬어도 비웃지 않고 말을 다 마칠 때까지 웃음 띤 얼굴로 기다려 주었다. 심지어 어이없는 질문을 던져도 항상 멋진 대답이 돌아왔다. 그 후 스피로 아저씨를 만나러 갈 때는 질문거리가 머릿속을 맴맴 돌아서 행복감에 빠지곤 했다.
한편, 신문 뭉치를 묶은 끈을 자르려는데 주머니칼이 너무 무디어져서 영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물 장수 아라 티 아저씨에게 미리 돈을 주고 칼을 갈아 달라고 부탁했다. 돈을 받을 때만 해도 굽실대던 아라 티 아저씨가 며칠이 지나도록 주머니칼을 돌려주지 않을뿐더러, ‘칼’이라고 똑바로 발음하지 않으면 영영 돌려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말 더듬는 머저리로 본 것 같아서 화가 치민 나머지, 맘에게 그간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맘은 평소에 아라 티 아저씨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야단을 칠 줄 알았지만, 주머니칼을 직접 찾아다 주겠노라고 하고선 휴가를 내고 집을 비웠다.
며칠 후 맘은 누구한테 흠씬 두드려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나타났으며, 설상가상으로 아라 티 아저씨가 내 방에 몰래 침입해 지갑과 시계를 훔쳐 가면서 큰 사달이 벌어지게 된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
신문 배달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말더듬증 때문에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에만 매몰되어 있던 ‘나’가 차츰차츰 주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것은 사회로부터, 그리고 제도로부터 자신만큼이나 소외되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 좌석이나 동물원 입장 같은 아주 기본적인 일에서마저도 차별을 받는 맘, 남편과의 소통 부재로 외로움을 오로지 술로 달래며 우울증을 앓는 워싱턴 부인,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읽어 내는 연습을 하느라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청각 장애인 폴…….
‘나’는 피부색 때문에 겪게 되는 사회적 제약을 묵묵히 감내하는 맘을 대신해 겉모습에 따라 차등을 두는 그릇된 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늘 술에 절어 사는 워싱턴 부인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가슴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말을 하지도 듣지 못해서 홀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폴에게는 기꺼이 친구가 되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비로소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말더듬이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깨우친 채 타인의 삶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제 더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해 타자기로 쳐서 전하던 지난날의 어수룩한 말더듬이가 아니다. 엄청 느리고 발음이 웃겨도, 그리고 수없이 더듬거려도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 하는 당찬 소년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렇듯 《페이퍼보이》는 온 가족이 눈물겨운 노력을 한 끝에 어렵사리 말더듬증을 고쳤다는 식의 뻔한 교훈을 담고 있지 않다. 자신이 가진 장애를 비록 고치지는 못하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아울러 장애가 있건 없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그 무엇도 나를 막아서지 못한다는 보편적인 인생의 진리를 진중하게 일깨운다. -

시간의 감촉
- 저자
- 은희경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연도
- 2026
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가 교차하는
그 모든 문장의 감촉이 눈부시게 찬란하다.” _황인찬(시인)
『새의 선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의 대미
‘왜 여전히 은희경인가’에 대한 결정적 대답
성격도 외양도 너무 다른 자매 안나와 경선.
서로의 몸에 새겨진 미지의 기억들과
삶의 저녁에 맞이하는 모든 ‘첫’의 순간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미래를 함께 펼쳐 보이는 이야기
은희경이 장편소설로는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2019) 이후 7년 만에 반가운 신작 『시간의 감촉』을 펴낸다. 은희경은 누구인가?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누적 발행 100쇄를 돌파하는 신화를 이룩해낸, 삼십여 년간 소설집 일곱 권과 장편소설 여덟 권을 선보이며 한시도 소설쓰기를 멈추지 않은 현역.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 내면들로 얽힌 사회의 모습을 감상성 없는 냉철한 시선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사유, 치밀하게 벼린 문장으로 풀어헤치며 뭇 독자마다 애정하는 작품이 하나같이 다른 작가. 발표하는 작품이 곧 사건이고 언제나 새로움을 선사하는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거장.
그런 작가가 계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부터 2025년 가을호까지 연재를 마친 후 숙고의 시간을 거쳐 다듬어 펴내는 『시간의 감촉』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라는 조건하에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안나와 경선이라는 자매의 모습을 통해 진진하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간의 감촉』의 ‘작가의 말’에서 “한 사람의 몸에 담긴 시간과 공간과 사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다. “발견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장편이 “『새의 선물』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의 대미라고도 말한다. 『시간의 감촉』은 사반세기 넘게 회자되며 여전히 뜨겁게 읽히고 있는 데뷔작 『새의 선물』과 과거의 편집을 통해 한 세대의 어둠을 빛으로 되살려낸 근작 『빛의 과거』를 거쳐 이 시대에 도달한 새로운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현재형 시제로 쓰인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동시대적 시간 감각, 타인의 살갗과 내면 모두를 감각하게 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장면 장면의 디테일, 삶과 죽음의 사유로써 잊지 못할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번 작품은 은희경을 따라 읽어온, 혹은 처음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단 한 권의 ‘결정적 소설’로 다가가리라 믿는다.